토요타 크라운 에이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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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oyota Crown Eight/トヨタ・クラウンエイト
1. 개요[편집]
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토요타에서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생산했던 고급 승용차이자, 일본에서 최초로 만든 V8기통 엔진이다 .
2. 상세[편집]
2.1. 개발 배경[편집]
일본 역사상 최초의 V8 엔진 탑재 차종으로, 1967년 토요타 센추리의 기반이 된 차이다. 1955년에 출시된 '토요페트 크라운 RS'를 출시했는데, 전면부에는 독립식 서스펜션과 저상형 섀시 등 승용차 전용 설계를 통해 트럭 수준의 섀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. 이로 인해 일제 승용차의 지위가 한 층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. 기존 소형차 기준이 올라가면서 1,500cc였던 배기량이 1959년 이후부터는 1,900cc로 확대되면서 당시 일본제 승용차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지위에 있던 차종이었다.
토요타 크라운은 1962년에 최초의 풀 체인지가 이루어졌는데, 미국 포드에서 생산했던 소형차인 '팔콘'의 영향을 받아 플랫 데크 스타일을 갖추면서도 당시 일본 소형차의 표준형 정도 되는 차종이었으며, 엔진 역시 1세대 크라운과 같은 1,900cc 형태의 엔진이 탑재되었다. 1세대 및 2세대 토요타 크라운은 일반용 및 택시 등으로 이용되면서 플릿 수요 등에서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으나, 1960년대 초반의 일본 정부 및 대기업의 VIP급 관용차의 경우에는 미국의 풀 사이즈 세단[1] 이 주로 이용되었다.
토요타의 경우, 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RS40형 차량을 기반으로 한 대형 세단을 1963년 가을 전일본 자동차 쇼[2] 에서 최초로 차량을 공개했으며,1964년 4월 20일에 '크라운 에이트'라는 이름을 달고 공식 출시했으며, 토요타 역사상 최초의 3넘버 차량이었다.
2.2. 1세대 (VG10, 1964~1967)[편집]
코드명은 VG10, 토요타 크라운의 이름을 달았으나, 등급이 서로 다른 차량이었다. 차량의 가격은 도쿄도에서 165만엔에 판매되었다. 차량의 생산 대수는 연간 500대가 목표였다.토요타의 경쟁사였던 프린스자동차[3] 의 2.5L 직렬 6기통 차량인 '프린스 그랜드 글로리아'가 일본 황실 및 궁내청에 주로 납품이 이루어진 반면 크라운 에이트는 당시 일본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의 관용차로 이용되었다.
1965년에는 토요타 크라운과 함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는데, 민간 및 특별 사양에 4단 플로어 방식의 변속기가 적용된 차량의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, 1967년에 후속격 차종으로 토요타 센추리가 등장하면서 단종되었고, 1987년 1UZ-FE형 엔진을 적용한 8세대가 나오기 전까지 토요타 크라운에 V8 엔진 사양이 등장하지 않았다. 그리고 센추리는 2019년 현재 3세대까지 이어오고 있다.
2.2.1. 특징[편집]
일본산 승용차 최초로 수랭식 2.5L V8 OHV 알루미늄 엔진이 장착되었으며,115PS의 최대 출력을 냈다.차체 구조, 디자인 및 기본 구성은 서브 프레임을 기반으로 세미 모노코크 방식의 차체가 적용되어 RS40형 토요타 크라운의 섀시를 적용했으나 전장을 110mm 늘려 4,720mm[4] 를 기록했고,전폭은 150mm 늘어난 1,845mm[5] 등으로 RS40형 크라운에 비해 길어진 편이다. 전폭은 토요타 크라운 마제스타 200형의 경우도 1,810mm이다 보니 역대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차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긴 전폭을 자랑한다.
1963년 2월에 출시된 닛산 세드릭 스페셜과 같은 해 5월에 출시된 프린스 그랜드 글로리아 등의 당시 일본 내 경쟁 차종들은 기존의 차체는 그대로 두는 대신에 휠베이스를 약간 늘리고 엔진을 2.5L~2.6L 급을 적용한 반면, 크라운 에이트는 본격적인 대형차다운 비율 및 승차감이 장점이었다.
장비로는 2단 자동 변속기, 파워 스티어링, 파워 윈도우, 전자식 도어락 장치[6] , 조명 제어 장치 및 크루즈 컨트롤 등 당시의 일본차로서는 보지도 못할 거의 요즘 차에서나 볼 법한 호화로운 장비들이 전 사양에 적용되었다.크루즈 컨트롤의 경우에는 1세대 토요타 크라운이 일본에서 재빠르게 옵션 채용하고 있었으며, 크라운 에이트에도 옵션 사양으로 적용되었다. 또한 전면 및 후면부 측면에 삼각형 형태의 창문이 적용되었다. 이외에도 문을 열 때 가벼운 힘으로 열 수 있도록 전자식 도어 레치가 적용되었으며 이는 도어 핸들을 단순히 전기 스위치로 한 간접적인 시스템이었다.[7]
3. 여담[편집]
- 당시 토요타의 사장이었던 야마구치 노보루는 경주마 마주이기도 했는데, 자신이 소유한 암컷 말의 이름을 '크라운 에이트'로 일본 중앙 경마회에 신청했으나, 상품명은 인정이 안 된다면서 기각되자 '에이트 크라운'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신청했는데 통과되었다는 일화가 있다.
4. 둘러보기[편집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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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1] 당시 일본에서는 대형 세단 취급을 받았다.[2] 도쿄모터쇼의 전신[3] 1966년에 닛산에 통폐합되었다. 참고로, 토요타 문서에도 언급되었듯이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이들을 담당하던 은행이 토요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가 과거 토요타와 원한을 진 과거 때문에 거절했던 일화도 있다.[4] RS40 형 크라운은 4,610mm의 전장을 기록했다.[5] RS40형 토요타 크라운은 1,695 mm의 전폭을 기록했다.[6] 현재와 같은 집중식 도어락 방식은 아니다.[7] 이 문에는 단점이 있는데,배터리가 닳아버리면 전자식 도어 래치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문을 열 수 없게 되었다. 이로 인해 토요타 센추리에는 이 기능이 적용되지 않았다.